도봉구의 명소를 찾아서 - 9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
도봉구 평생학습 서포터즈 김진영 기자
도봉구 방학동에는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1위 또는 2위에 빛나는 ‘세종대왕’과 관련 있는 문화유산이 있습니다. 바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인데요. 이곳은 세종의 둘째 딸인 정의공주(?~1477)와 그의 남편 양효공 안맹담(1415~1462)이 잠들어 있는 부부 묘소입니다.
안맹담은 태종 15년(1415) 12월 28일 출생으로, 14살 때인 1428년 세종대왕의 둘째 따님인 정의공주와 혼인했는데요. 평소 초서(서예의 서체 중에서 한자를 가장 흘려쓴 서체)를 잘 써 서예가로 이름이 높았으며, 활쏘기와 말타기도 출중했습니다. 또한 음률에도 조예가 깊고, 약물을 갖춰놓고 남에게 봉사하였으며 불법을 좋아했는데요. 이런 그의 성품과 재능 때문인지, 안맹담이 세상을 떠나자 조정에서는 양효공(良孝公)이라는 시호를 내려주었습니다. 참고로 ‘양(良)’은 온화하고 선량하다는 의미이며, ‘효(孝)’는 어질고 은혜롭게 어버이를 섬겼다는 의미입니다.
정의공주는 성품이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책력과 산술을 잘 이해하는 인물이었는데요. 세종대왕은 특별히 정의공주를 아껴 저자도(옥수동 동쪽 한강에 있었던 섬)와 낙천정(광진구 자양동에 있었던 정자)을 내려주었습니다. 생전 정의공주와 안맹담 부부는 금슬이 매우 좋았다고 하는데요. 불심이 깊었던 정의공주는 남편의 명복을 빌기 위해 1469년 『지장보살본원경』(보물 제966호)이라는 불경을 간행하기도 했습니다.
무덤 앞에는 안맹담의 행적을 기록한 신도비(神道碑), 석등(石燈), 문관의 형상을 한 문인석(文人石), 묘 앞에 세우는 비석인 묘갈(墓碣) 등이 세워져 있는데요. 조선 시대에는 2품 이상의 관직을 역임하고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신도비를 만들어 세웠습니다. 신도비는 거북 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모습인데요. 받침돌의 거북 조각과 머릿돌에 새겨진 두 마리의 용조각은 매우 뛰어나면서도 정교한 편입니다. 참고로 신도비 아랫부분의 거북돌은 경복궁에 한 쌍으로 있던 거북돌 중 하나를 왕명으로 가져온 것이라고 합니다. 신도비의 윗부분에는 양효안공묘비라는 글씨가 전서체로 새겨져 있으며, 몸돌에는 안맹담의 생애와 업적에 대한 기록이 실려 있는데요. 신도비의 비문은 부부와 사돈이기도 한 하동부원군 정인지(1396∼1478)가 지었으며, 글씨는 부부의 넷째 아들인 안빈세(1445∼1478)가 썼습니다.
1466년에 세워진 안맹담의 신도비는 조선 초기의 신도비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손꼽히기도 하니까요.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방문해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 참고 자료 : 도봉구 문화관광 홈페이지